인자가 가진 권세
막 2:1~12
1. 마가복음
1) 저자 - 베드로의 제자이면서 통역자였던 마가로, 본명은 마가 요한이고 그 모친은 마리아이며 그 집은 제자들의 집회장소로 사용되었다(행 12:12). 그는 바나바의 사촌이었으며(골 4:10), 바울의 1차 전도여행 시에 동행하였다가 중간에 되돌아간 일도 있었고(행 13:5, 13), 주께서 잡히시던 밤에 한 청년이 따라오다가 벌거벗은 채 도망쳤다는 기록은 아마도 마가 자신을 가리킨 것으로 보이며(막 14:51~52), 그 후에 바울과 베드로를 도왔다(골 4:10; 몬 24; 딤후 4:11; 벧전 5:13).
2) 기록 연대 - 마가복음은 아마 주후 68년경 로마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요청으로 기록되어졌을 것으로추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주후 65년경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혹은 68년경), 바울은 주후
67~68년경 순교하였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3) 특징 - 마가는 마태나 누가와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기사를 기록하지 않았고, 이 복음서의 시작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 1:1)는 선언으로 알리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2. 예수께서 행하신 일
1) 마가복음은 그 시작부터 예수께서 행하신 일들에 대하여 많은 기록을 하고 있는데,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신 일(막 1:21~28), 시몬의 장모와 많은 병자들과 귀신 들린 사람들을 고치신 일(막 1:29~34), 나병환자를 고치신 일(막 1:40~45)이다.
2) 그 외에도 예수께서는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파하셨고(막 1:14~15), 어부들이었던 시몬,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부르시어 제자로 삼으셨으며(막 1:16~20), 갈릴리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귀신을 내쫓으시는 일도 행하셨다(막 1:35~39).
3)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께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받으라” (막 1:15)라고 선포하신 말씀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복음’이 그 핵심이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이도록 하시려고 때로는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시고, 때로는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신 것이다. 즉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그 모든 죄와 허물을 깨끗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복음으로 부르시는 것이다.
3. 인자가 가진 권세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한 사건
1)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 - 예수의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한 중풍병자를 예수께로 데려왔으나 많은 사람들로 인해 예수께 가까이 갈 수 없자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예수가 계신 방 안에 중풍병자를 들여보내었다. 이것을 보신 예수께서는 그들의 그런 행동이 믿음에 근거한 것으로 인정하시고,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선언하신 것이다(막 2:2~5).
2) 이 선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막 2:7)
3) 이런 선언을 하신 목적 - “9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람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시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막 2:9~11)
4) 인자가 가진 죄사함의 권세 - 서기관들이 말한 대로 죄를 사하는 권세는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기에 병을 고치는 것은 죄를 사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예수께서 죄의 사함을 선언하신 것은 병의 고쳐짐이 우선이 아니라 죄의 사함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며, 이 죄사함을 위해서 당신이 오셨기 때문에 중풍병자를 고치시며 그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선언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서기관들은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고쳐져야 하는 죄의 문제보다는 병이 고쳐지는 것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예수께서 죄를 사하신다는 선언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4. 이 말씀을 대하는 오늘의 성도들로서
1) 마가복음의 첫 시작부터 우리가 어디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막 1:1). 하지만 이런 마가복음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관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떠나 있다면 우리 역시 그 때의 종교인들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2) 하늘의 권세를 가지신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단 하나의 목적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함이며,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대속을 위한 일에도 그 권세를 사용하신 것이다.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면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그 일들을 깊이 묵상하고 감사하는 한 주간을 보내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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